작가노트

내 주변에는 비둘기들이 참 많이 보인다. 비둘기와 사람이 공존하는 도시 풍경은 너무도 자연스럽다. 언제부턴가 비둘기도 서울 시민의 한 일원 같다는 생각이 든 적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내 주변 상황이나 내가 보는 세상, 생각하는 것들을 비둘기나 또 우리 주변의 다른 여러 동물로 의인화하여 그리게 되었는데 결국 이 동물들은 세상을 살아가는 어느 누군가 일 수도 , 또는 나 자신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현대 사회를 지칭하는 또 다른 말은 아마도 ‘익명의 사회’일 것이다. 요즘 우리 사회를 살고 있는 사람들은 여러 익명적 상황에 매료되기 쉽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기 정체성을 잃어가며 실존의 위기를 겪는 현대적 삶 속에 살고 있는 현대인의 평범하고도 다양한 여러 초상을 동물을 통해 상징성 있는 현대인의 우화로 풀어보고 싶었다.

소설 ‘25시’의 작가 게오르규는 예술가의 사명을 ‘잠수함 속의 토끼’와 같은 역할이라고 말했다. 그 시대와 사회가 아무리 병들고 힘들다고 하더라도 어떤 징조에 대해 먼저 위기의식을 느끼며 고통스러워하고, 그 고통을 통해 다가오는 위기를 경고하는 존재 말이다. (과학이 발달하지 않은 옛날에는 잠수함 속에 사람보다 기압에 예민한 토끼를 같이 넣어 기압을 미리 느끼게 했다고 한다. )

현실의 문제를 기민하게 포착하고 이런 현실시대의 경각심을 반영할 줄 아는 작가가 되고 싶고 또 그것이 바로 작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현실 상황, 문제의식, 이런 익명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여러 초상들을 작품을 통해 위트 있게 풀어내고 싶다.

나에게 있어 동양화는 개념적인 의미도 무척이나 중요하지만 재료적이 매력이 크다.
처음 임시를 서양화로 했고 당연히 서양화과에 적을 둘 것이라고 생각했었지만 대학에 입학하여 경험하게 된 동양화는 나를 동양화로고 자연스럽게 옮기게 했다.

내가 이렇게 먹과 한지로 작업을 함으로써 동양화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내 주변사람이나 관객들에게 더 관심과 흥미를 끌게 한 경험이 있었다. 동양화는 사군자나 수묵풍경화만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꽤 많다는 사실에 처음에는 놀랐지만 점차 나도 즐거운 마음으로 작품을 설명하며 더불어 동양화의 매력에 대해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나를 통해서 현대 미술의 소용돌이 속에 있는 현대 동양화 작가와 작품에 대한 관심과 흥미가 늘어났으며 하는 바람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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